검색결과
-
파주 아리랑 축제 열다파주 아리랑 축제 열다 3월 23일(토) 오전 10시 30분부터 파주 평생학습관에서는 사할린동포 파주정착 15주년 기념 파주 아리랑 축제가 열렸다. 파주시 사할린 동포회, 파주 평화어울림무용단, (사) 국제문화공연교류회가 주최한 본 행사는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세계 5위 군사 강국인 나라로서 일제 치하 사할린으로 끌려가 갖은 고생을 하며 어떤 한국인은 무국적자로, 어떤 한국인은 러시아 또는 일본 국적으로 인간 이하의 삶을 영위하던 한국인들에게 15년 전 110명을 시작으로 고국에 돌아와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을 위로하는 행사를 매년 개최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관계 내빈들의 축사와 격려사에 이어 축하공연이 펼쳐졌다. 파주 평화어울림무용단의 한국무용, 고양 희락예술단의 진도 북놀이, 서울강남아리랑 예술단의 강남아리랑, 이 현주, 이종미, 금이랑, 제임스 킴등의 가요, 중국동포, 러시아 동포의 출연등으로 무대는 한껏 고조되었고 특히 진도 북놀이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참가 관객들은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가졌고 행사가 끝났을 때는 모두 아쉬워하며 다음 공연을 벌써부터 기다리는 표정들이었다.
-
행복과 늘 함께하는 최예연 원장행복과 늘 함께하는 최예연 원장 사람들은 평생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간다. 평탄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에 처하여 평생 허덕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의 질병이나 고난으로 함께 고통을 인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 등 이런저런 이유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웃음꽃 만발한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기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고 늘 재능 기부를 30여년 하시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본인도 행복한 삶을 견지 하며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크게 기여하는 분이 있어 소개한다. 최예연 원장은 주로 서울, 경기지역에서 경기소리 민요, 춤으로 봉사활동을 하는데 한마음 예술단을 이끌며 오랜 봉사활동과 수준 높은 공연으로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은 춘천시가 돤 옛 춘성군의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할 수 있는 시골에서 태어나 십리도 더 떨어져 있는 금병초등학교를 힘들게 졸업했고 체육특기자로 유봉중학교까지는 다녔으나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접어야 했다. 그 후로 공부에 대한 열정은 있었으나 가정 형편이 안 되어 계속 미루어 오다 우연히 “열린 문 사회복지센터”에서 무료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학업을 이어가게 되었다. 과정을 마치고 결국 검정고시를 통해 방송통신대 교육학과도 졸업하고 국제디지털대학교 사회심리학도 마쳤다. 졸업후 복지센터에서 교사로서 봉사를 하면서 ‘경기 소리’를 배우고 부채춤 등 고전 무용도 함께 배웠고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게 된 후에는 양로원 등 복지센터에서 공연 봉사를 시작하였다. 이 곳 저 곳 공연 봉사할 기회가 늘어나게 되자 보다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난타, 검무 등을 배워 선보이게 되었다. 남 앞에서 공연한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보니 부단히 노력하여 수준 있는 기예를 보여주어야 했기에 엄청난 노력을 하여야 했다. 젊어서 너무 고생을 하여 몸이 좋은 상태가 아니어서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했다. 다행히 좋아서 하는 일이라 여러 난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요양원 환우들의 뜨거운 반응이 있고 기다리는 얼굴들이 선하여 멈출 수가 없었고 하다 보니 어느덧 30 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마음 예술단”의 10여명의 단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나눔 봉사를 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늘 행복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구경하는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단원들도 꾸준히 무대를 위한 연습을 같이하고, 보다 수준 높은 공연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고 공연할 때 모두가 하나 되는 순간을 맞이할 때는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수시로 공연 봉사를 다니는 것을 보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가 보다.” 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여유로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많은 봉사자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를 극복해 가며 함께 행복한 순간을 갖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최 원장은 남편 김영동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가 있고 때로는 공연에도 함께 해 주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부군은 특히 에어로폰(전자 섹스폰) 연주로 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기도 한다. 최원장은 처음에는 복지관등에서 소리와 춤을 지도하였는데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시간만으로는 소리와 춤을 제대로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연습량이 많아야 하는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여건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어려움을 감내하며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봉사를 다니고 함께 나누는 행복을 누리며 행복해 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소리와 고전 무용은 기본으로 하고 난타나 사물놀이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지금은 검무를 열심히 익혀 보는 이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려고 하고 있다. 고양시 비룡정사 보인 스님이 지도하는 검무 교실에 참여하여 정말 열심히 하는데 육체 및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작년 7월에는 서울 종로 5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검무 공연을 하여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은 바 있다. 검무가 관객에게 뜨거운 호응을 가져 올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남편의 병수발과 자신의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연히 배우게 된 소리와 춤이 최 원장의 운명을 기적같이 바꿔놓았다. 노래와 춤이 나누는 봉사를 하게 만들었고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어떤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를 물어야 한다. 최원장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사회는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
영원한 우슈인 이 승수 사범이 펼치는 세계영원한 우슈인 이 승수 사범이 펼치는 세계 우슈(武術 무술의 중국 발음)가 한국에 전래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1970-80년대에 홍콩 무술 영화, 특히 쿵푸 관련 영화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영화를 본 청소년,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실제로 우슈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영원한 우슈인인 이 승수 사범도 이렇게 시작했다. 우슈는 자아의 생존 방위 혹은 종족유지를 위한 인간 자연 본능에서 출발하였다. 기원과 관계되는 문헌은 후한(後漢)의 반고(班固 서기 32 ~ 92년)가 지은 한서 백권 중에 수박육편(手搏六編)으로 가장 오래된 무예서이다. 우슈는 동양사상의 하나인 지행합일(知行合一)사상의 영향을 받아 생성 발전되었으며 실천을 중요시하는 지행합일 사상은 우슈의 발전에 실마리가 되어 우슈의 운동형식과 기술체계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현대의 우슈는 전통우슈를 바탕으로 1990년 제11회 중국 북경 아시안게임에서 우슈경기 7종목(장권, 남권, 태극권, 도술, 검술, 창술, 곤술)이 채택되어 국제 스포츠계에 공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1993년 중국 상해에서 제1회 동아시안 게임과 그리고 1994년 일본 제12회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또 1997년 부산 동아시안 게임에도 채택되었고 제13회 태국 방콕아시안게임에도 채택되었으며 산타 경기가 추가 되었다. 우슈의 종목으로는 중국 북방무술이라 할 수 있는 장권(長拳)과 남방무술이라 할 수 있는 남권(南拳)과 양생술인 태극권 (太極拳)의 권법부분과 단 병기인 도술(刀術), 검술(劍術)과 장병기인 곤술(棍術), 창술(槍術)의 무기술 부분의 표연 경기와 동급 체급선수간의 자유대련으로 승부를 겨루는 산타(散打)가 있다. 우슈는 중국 전통 쿵후(功夫)를 중국 정부의 노력으로 현대 스포츠로 재탄생시킨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우슈가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 전통 쿵후는 1950년대 전후에 국내에서 화교들에게만 무술을 지도하던 중국 쿵후의 고수들이 한국인들에게도 전수하게 되었고 소수의 한국인들이 어렵게 무술을 전수받아 국내에 보급시킨 것이 오늘날의 한국 전통 쿵후 십팔기 무술의 뿌리가 되었다. 초창기 쿵푸 무예를 전수했던 중국의 노사(先生)는 서울에서 소림권의 고 광유 노사, 매화 당랑권의 임 품장 노사가 전수하였으며, 인천에서는 팔괘장의 노 수전 노사가 전수하였고, 부산에서는 당랑권의 강 경방 노사가 전수하였다. 그리고 화교무술가의 이 덕강 노사와 여 품삼 노사 등이 지도하였다. 국내의 쿵후무예는 임품장 노사와 이덕강 노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며, 이들에 의해 지도받았던 한국의 무술인들이 사범자격을 인정받게 되었다. 한국의 사범들이 늘어나면서 무술 사범들의 구심점이 필요하여 사단법인 대한쿵후협회의 모체인 대한 십팔기 무술협회의 황 주환 회장님께서 중국 노사들과 협의한 후에 1965년 아현동의 국술총본관에서 (당시 대만의 대사관에서 인정받음) 대한민국 최초로 본 협회의 모체인 [전국무술국술협회]를 창립하고 총재로는 중국의 임 품장 노사가 추대되고 회장은 한국의 황 주환 노사가 추대되어 중국 십팔기 무술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 후 1967년 3월에 한국의 쿵푸 무술인으로 구성된 [대한십팔기무술협회]를 설립하여 회장으로 재추대 되면서 한국 십팔기무술 문화의 새 시대를 열었다. 협회가 설립된 후에 강용일, 이일형, 김갑현, 김주헌, 정소우, 최상철 등 국내 1세대 무술 노사들이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무술도장을 개관하여 쿵푸 십팔기무술을 본격적으로 전수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89년에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단체인 ‘대한 우슈협회’가 설립되고 사회단체인 ‘대한십팔기협회’가 유사단체로 활동하여 1997년 12월에 대한십팔기무술협회를 ‘대한 쿵푸협회’로 개명하면서 전통권과 현대권으로 분류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중국의 현대무술 우슈(Wushu)가 들어오면서 한국의 전통무술(전통권) 쿵후(kung-fu) 수련자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근대 무술 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쿵후(십팔기)무술의 전통권법이 소실될 위기까지 왔었다. 이러한 위기감과 안타까움에 사단법인 ‘대한 쿵푸협회’ 최 주성 회장이 중심이 되어 본 협회의 설립자이신 황 주환 회장님을 총재로 추대하고 뜻을 함께 한 의식 있는 소수의 사범들과 조직개편을 하여 강경한 의지로 전통권법을 지켜가자는 뜻을 모아 많은 시련과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국내 최초로 설립된 중국무술 쿵푸 무술협회를 해산시키지 않고 전통권법을 우리 민족의 정서와 체형에 맞게 토착화시키는 등, 한국의 전통 쿵후 무술을 계승 발전시켜 전수하고 있다. 이승수 선수는 1968년생으로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체육학과 중퇴 하고 1989년도 우슈 국가 대표에 도전하여 1년 반만에 국가대표 선발되어 1993년도 중국 상해에서 제1회 동아시아 대회 동메달을 획득에 이어 같은 해 가을 미국에서 실시한 국제 무술대회에서 우승했다. 그후 1995년 국가대표선수는 은퇴하고 지금은 경기도 도민 대전 선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대한호국불교 소림선종 혜능국제불교 대학 무술 총지도 사범 및 일산에 사)무예문화원 대도화랑무예 일산지부 전수관 관장으로 대도화랑무예 및 유슈, 12종 체형관리/ 시니어 라이프 내공운동 / 키 성장관리 / 다이어트 관리를 하고 있다. 우슈는 국민 건강을 향상 시킬 수 있는 좋은 종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지만 생활체육으로 자리잡아 보편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영화인 ---한명구 영화 감독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영화인 ---한명구 영화 감독 21세기 들어 한류 음악, 영화, TV, 문학 등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한국의 진가를 전 세계가 이제 눈을 뜨고 인류의 값진 유산으로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중에 영화감독으로 세계인의 눈길을 끄는 감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미 영화에 웬만한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영화에서 감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상식인데 그것도 세계가 인정하는 영화제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감독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다. 한명구 영화감독도 그 중 한 명이다. 밑바닥부터 시나리오를 써 보기도 했고 수십 편이 넘는 영화에 직접 조연, 주연 등으로 출연하여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직접 메가폰을 잡고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지도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넘어 세계인이 주목하는 감독으로 성장하여 명실공히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다. 한 감독은 특정한 장르에 국한된 감독이 아니다. 모든 장르에 걸쳐 영화를 만들어왔고 풋풋한 삶을 통하여 잔잔한 감동을 주는 아동용 영화로부터 사회 문제를 다뤄 많은 이들에게 사회가 겪는 아픔과 갈등을 예리하게 파헤쳐 사회가 가야 할 방향에 끝없는 질문을 던져 스스로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데 공헌하기도 하고 영화의 본질적 기능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접근하여 영화의 차원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하였다. 삶의 깊이가 묻어나는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지극히 한국적인 영화인데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여 다양한 연기를 하고 연기를 하면서 해당 역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각 인물들에 대한 이해와 깊이를 더해가며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성격 등을 표출하는데 자신만의 확고한 능력을 확보하였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키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마침내는 세계적인 감독으로 우뚝 서는 발판을 확립하였다. 국내외 여러 영화제 등에서 주목 받아 상복이 터질 정도로 많은 상을 받았는데 몇 가지만 살펴보자. 만해 한 용운의 항일 투쟁과 삶을 다룬 영화 “님의 침묵‘으로 “오리사 인도 국제 영화제에서 STAR FILM & OTT AWARDS 2023”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받기도 했고 인도 뉴델리 한류 페스티벌 조직위원회가 주관한 한- 인도 수교 50 주년 영화문화 포럼 겸 한국영화제에서도 같은 작품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
23전통무예 격파 명인전23전통무예격파격파명인전 0.1초의 미학이 펼치는 세계 제4회 고양특례시 격파 협회장배 격파 명인전이 지난 10월 7일 관산동 태극기공원에서 고앙특례시 체육회 주최, 격파협회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격파 승단심사, 격파 명인전에 참가한 선수 200여명 및 관계기관 임원 수십 명이 함께하여 0.1초의 한순간에 수년, 또는 수십년 닦아온 기량을 펼치는 행사를 치뤘다. 오현주 협회장의 대회 선언과 안운섭 고양시 체육회장의 격려사등으로 대회는 한껏 고조되었으며 석보인 원장의 축사로 전통무예의 꽃이라 평가되는 ‘격파’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모두들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격파 승단 심사에서 각 소속 단체의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작년 속도 명인으로 등극한 거인회 소속 설 민지(37세, 시흥 거주하며 광명시에서 소하 태권도 도장 운영)도 좋은 경기를 보여주었고 유기현사범(40세, 화성시 반월 태권도장 운영)은 격파의 매력에 빠져 매일 손날치기를 3000번하면서 심신을 꾸준히 단련하여 위력 명인에 2년 연속 등극하였으나 아직 몇 번은 더 등극해야 진정한 명인이라 할 수 있다며 일반 대중들에게 이름을 밝히는 것도 꺼린다. 이런 명인들을 접하면서 격파무예가 진정 추구하는 것이 완벽한 육체를 넘어 인격도야의 완성에 있으며 인류가 가야할 이상 세계를 이룩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4회고양특례시협회장배 전통무예격파대회 격파명인전 입상자 명인선정전 (주먹위력) 반월태권도 유기현 손날위력 충의급- 1위 일격회 여은석, 2위 고수회 김성용, 3위 거인회 김상운 효의급- 1위 고수회 박상근, 2위 거인회 김태범, 3위 추정재 추정재 예의급- 1위 거인회 정현준, 2위 무림회 엄대근, 3위 손기술협회 노용현, 거인회 강민구 신의급- 1위 돌풍회 이정수, 2위 거인회 이은석 여자 - 1위 거인회 위진, 2위 무연회 정선미, 3위 거인회 설민지 주먹위력 충의급- 1위 거인회 홍정수 효의급- 1위 거인회 이성환 예의급- 1위 고수회 김승리 신의급- 1위 돌풍회 이정수, 2위 거인회 이은석 여자- 1위 거인회 설민지, 2위 거인회 주혜은, 3위 거인회 위진 주먹속도– 1위 고수회 김성용 손날속도(남)- 1위 대건태권도 김종은, 2위 국가대표태권도 나진우, 3위 거인회 홍정수 발앞축- 1위 고수회 김성용, 2위 손기술협회 노용현, 3위 고수회 박상근 발뒷축- 1위 고수회 박상근, 2위 무림회 엄대근, 3위 고수회 김지상
-
용미리 --- 행복에 물들다용미리 --- 행복에 물들다 12만 영령들이 고이 잠들어 조용하기만 했던 용미리에 빵빠레가 울려 퍼졌다. 지난 7월 22일(토) 파주시 광탄면 용미 4리 마을 회관 앞마당에 노래와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박명일 단장의 하모니카 합주곡 메들리가 시작되며 마을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주민 5백여명 뿐만 아니라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영령들도 잠을 깨고 귀를 쫑끗하기에 충분했다. 이어지는 전지영의 노래 ‘가라지’, ‘비내리는 영동교’는 주민들의 마음을 홀렸다. 노래 하나로 사람을 이렇게 사로잡다! 다음은 강신학의 인사말과 ‘안동역에서’, ‘사랑이 뭐길래’ 등이 이어졌다. 강신학(화랑무예봉사단 파주지회장)은 고양시, 파주시등에서 이미 소문난 가왕이었다. 타지에서 강신학의 공연을 우연히 보게 되었던 마을 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오늘 행사가 사실 이루어졌다.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강신학의 노래는 마을 주민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런 시골에서 유명가수들의 무대보다 더 감동적인 노래를 듣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들이었다. 계속하여 권아리, 김선혜, 최동원, 우영래 등의 무대가 이어졌고 주민 박인석의 노래와 섹스폰 연주, 송정옥, 손점미, 임영채, 윤덕한등의 노래로 관중석 마당은 노래를 넘어 흥겹고 신나는 춤의 한마당으로 넘실댔다. 고석사범의 부채춤, 강신학의 추억의 동동구루무 등 다채로운 공연으로 마을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더위가 어디 있는가? 노래와 춤만으로 더위도 도망가고 마을 사람들은 행복에 물들지 않는가? 두어시간 지속된 공연으로 모두가 행복해했다. “노래와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은 계속될 것이다. 노래로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각박한 마음을 녹여내고 모두가 하나 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화랑무에 봉사단은 꾸준히 노력할 것입니다.” 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김광훈 총감독의 말씀처럼 우린 노래만으로 밝은 사회를 만들 수 있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
노래강사 강은비 인생을 노래하다노래강사 강은비 인생을 노래하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이 질문에 당당하게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사실 행복을 느끼는 것은 쉽다. 행복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그저 그런 날로 힘들게 살아들 가고 있다. 행복에 대한 생각만 바꾸면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한 사람이 있다. 불행한 삶을 거부하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 노래교실 강사를 만나 본다. 강은비(본명 김도경)는 고양특례시, 파주시, 김포시, 서울 서부 지역등에서 이름난 노래강사다. 감성이 풍부하고 호소력 있는 가수로서 수많은 노래대회에서 대상을 받거나 상위권에 입상한 경력으로 가수 실력은 일찍이 입증되었지만 본인은 노래강사로서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다. 지금은 현재 하는 일에 아주 만족하고 행복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수없는 난관을 해결해야만 했다. 어려서부터 노래 잘하기로 소문이 나서 학교 학예회 발표나 행사가 있으면 단골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러 인기를 독차지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가수가 되는 것을 집안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몰래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다니며 노래를 배워 실력을 키워 나갔지만 공개적으로는 노래를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힘들기만 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되어 이제는 달라지려나 기대했으나 변한 것은 없었다. 시댁도 완고한 유교 집안이라 여자가 밖에 나도는 것을 싫어했고 더군다나 무대에 서서 활동하는 것은 더더욱 용납이 안되었다. 그런 와중에 도회생활에서 시골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농촌 일을 하는 것이 낯설기만 했고 힘든 나날이 계속되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며느리로서 농촌 일을 거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일이 손에 도저히 익지 않아 모든 일이 너무나 힘들 뿐이었다. 돌아오는 것은 일 못한다는 꾸중뿐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는 있었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 계속되었다. 안되겠다 싶어 결국 시어머니와 힘든 담판을 지어 노래 강사가 되는 길을 가기로 허락받았다. 노래에 소질이 있어 가수의 길도 생각해봤으나 지방공연 등 집을 비워야 하는 일이 잦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 접기로 했다. 하지만 그동안 집안 몰래 꾸준히 노래를 연습하여 크고 작은 가요제에 참가하여 대상, 또는 1등상 등을 수없이 받으면서 꾸준히 노래 실력을 키워 왔다. 본격적으로 노래강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마쳤다.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노래강사 자격증,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여 노래를 가르치는 일에 뛰어 들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노래 한 곡을 새로 만나면 이 노래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금방 생각이 떠올랐다. 곡 분석, 발음 하는 법에서부터 한 소절 한 소절 음정 박자를 정확히 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감정 이입시키는 법등을 지도하다 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갔고 노래에 따라 변용하는 법을 제시하여 노래를 보다 맛깔스럽게 호소력 있게 부르는 법을 가르쳤다.간간히 난센스 퀴즈 등 재미있는 이야기도 소개하여 노래 수업에 재미를 더했다. 학생들이 계속 늘어나고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노래 교실을 여러 군데서 하고 있어 이리 저리 먼 길을 오가야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하고 있다. 노래를 부르고 지도하면서 성격도 서서히 변해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상당히 직선적이어서 예전에는 사람들과 부닥치는 일이 가끔 있어 어려움이 있었는데 많이 부드러워졌다. 특히 고양시 대자동에 있는 비룡정사에서 노래교실을 열며 보인 스님과 인연이 되어 법문도 듣고 상담도 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깊이 깨 게 되고 나아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래의 소중함을 새로운 차원에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래 한 곡에 귀한 부처님의 법문이 들어 있고 인생이 녹아 있음을 알게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을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절감하니 하는 일이 신이 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소중하여 함부로 대할 수가 없고 모두가 귀한 인연이라 여기고 오랜 만남을 이어가며 행복한 삶을 계속할 것이다. 강은비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파주지역에서 많이 하는데 주간보호센터 등에서 어른신들을 모시거나 돌보는 일을 한다.노래를 불러 드리거나 목욕, 식사 시중을 거드는 등 다양한 일을 하는데 소소한 일 같지만 어른들이 만족해 하시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본인도 보람을 느끼며 이런 게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몇 년 전 부터는 재능 기부 봉사단을 이끌고 이 곳 저 곳 찾아가는 가요 콘서트를 열고 있다. 주로 경기 지역에서 활동하지만 때로는 경상도 전라도 등 먼 곳까지 진출하기도 한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출연하거나 사회자로서 활동하는데 관객들을 적극 참여시켜 모두가 어우러지는 한마당이 수시로 펼쳐진다. 한바탕 신나게 놀다보면 누가 출연자고 관객인지 잊게 된다. 혼연일체가 되어 흥겹게 노래하거나 춤추게 만드는 것은 사회자로로서의 강은비의 힘이 엄청남을 실감하게 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이 곧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노래 강사 강은비를 통해 진정한 올바른 삶과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헤 보게 되고 이 사화가 나아가야 할 건전한 길을 찾게 된 것 같아 기쁘다.
-
노래와 함께하는 행복의 전도사 강신학노래와 함께하는 행복의 전도사 강신학 경기도 고양시, 파주시 일대의 길거리, 요양원, 복지관, 관광명소 등에서 꾸준히 공연을 하여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 있어 화제다. 그 이름 강 신학.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출신인 강신학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유난히 좋아하여 학교 학예회 등에서 노래로 인기를 모았다. 나이가 들면서도 꾸준히 노래를 취미로 해왔지만 노래를 본업으로 할 생각은 못했다. 육칠십 년대는 연예분야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았고 그것으로 밥벌이가 된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젊어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이것 저것 안해본 것이 없을 정 도로 여러 직장과 사업도 해 봤다. 그러다 보니 생활에 여유가 생겼고 노년이 되면서 소위 인생 2막을 생각했다. 취미 생활로 계속 해 오던 노래와 악기 연주를 활용하여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하는 행복 만들기 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비룡정사 화랑 예술봉사단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노래로 만들어 가는 행복한 세상에 합류한 것이다. 화랑 예술 봉사단은 연륜이 있는 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풍부한 사회경험과 오랜 연습과 기량을 닦아 뛰어난 예술 재능이 확보되어 있어 언제든지 공연할 준비가 되어 있는 단체이다. 여기에 함께 하면서 강 신학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멋드러진 노래와 섹스폰 연주는 가는 곳마다 인기를 더해가면서 오빠부대가 만들어 질 정도로 발전해 갔다. 처음 길거리 버스킹으로 시작하였는데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인생이 묻어나는 그의 노래는 길 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한두 명으로 시작한 청중이 금방 몇 십 명으로 불어났다. 어느새 가수왕이란 별명이 붙게 되었고 관중들로부터 가수왕이란 환호를 받기도 했다. 거기다 양념처럼 등장하는 섹스폰 연주와 동동 구르무는 추억의한 장면으로 세월을 되돌려 놓으며 아련한 향수와 함께 그 어려웠던 시절로 달려가게 만들었고 어떤 이는 눈물을 글썽였고 어떤 젊은이는 낯설어 하며 이게 무어나고 묻기도 했다. 그래서 친절하게 동동 구르므에대해 설명해주면 그때서야 이해된다는 눈빛을 보내주었다. 가끔씩은 노랫말이나 노래에 얽힌 사연들을 소개해 주며 청중들의 이해를 도와주기도 했다. 그의 공연은 요양원, 복지관등으로 확대되면서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마장 호수공원, 장흥 유원지, 일산 호수공원, 운정 호수공원 심지어는 서해 바다에 접하고 있는 궁평 항, 멀리 지리산 자락까지 가서 공연을 했다. 그만큼 그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었다. 예술단의 공연 목표인 산천초목이 환희심을 내고 하늘이 감동하는 노래를 만들어 가는데 큰 역할을 몸소 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움츠려들고 하릴없이 고스톱으로 세월을 보내거나 하찮은 일로 서로 시비하거나 아니면 병원 문을 들락거리는 일로 하루하루를 마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삶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아름다운 재능 기부를 통해 행복한 삶을 함께 하며 이웃들과 공감하고 인생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몸으로 직접 보여준다. 공연 이외의 시간에는 경매장등을 다니며 골동품을 수집한다. 값비싼 오래된 도자기 같은 것보다는 과거 생활과 관련된 용품들을 주로 모은다. 급격한 산업화와 현대화로 과거의 소중한 우리의 삶의 일상을 보여줄 수 있는 물건들이 안타깝게 사라지는 것을 보고 여러 경로를 통해 수집해 온지 수십 년이 되었다. 골동품에 대한 공부도 꾸준히 하여 전문가다운 식견을 갖고 있다. 생활사 박물관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물건도 충분히 확보되었고 안목도 키웠다. 과거 우리가 잊어 버렸던 세월을 되살려내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내는 공간을 확보하여 시민들에게 선보일 날이 멀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우리는 강 신학을 통해 “노년의 행복한 삶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근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나누는 삶,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되며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나의 행복임을 우리는 강 신학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태산 스님이 10분만에 쓴 시(詩)를 박토벤 작곡가가 10분만에 작곡한 삼천개의 바람 꽃태산 스님이 10분만에 쓴 시(詩)를 박토벤 작곡가가 10분만에 작곡한 삼천개 의 바람 꽃 “이것 스님이 쓴 시(詩)인데 노래 가사가 되나 읽어보시죠” 하고 “3천개의 바람 꽃” 시를 박토벤 작곡가 앞에 놓았다 “아 그래요 스님이 쓴 시라고요” 그냥 가볍게 원고를 귀찮은 듯이 잡드니 갑자기 얼굴색이 밝아지면서 컴프터 앞으로 가더니 작곡된 작품을 베끼듯 작업이 들어 간지 10분 쯤 되었을까 오선지에 그려진 작곡한 종이가 프린트되어 나온다. 그리고는 박토벤은 너무나 뜻밖의 글이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홀린 듯 끌려 들어가 작곡을 했다, 합정역 5번 출구는 15분만에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이 작품은 10분 만에 했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곡은 강원도 홍천 ‘오봉산 천봉사“ 큰 절의 주지 태산 월봉스님이 추운 겨울에 토굴에서 100일 기도 끝에 천상으로부터 시상을 내려주어 10분만에 쓴 시(詩) ”3천개의 바람 꽃“ 이다. 경남 미량 출생의 태산 스님은 18세때 승려가 되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공부보다 운동을 좋아해 태권도 선수 생활까지 했으나 18세되어 승려가 되었단다. 원래가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하다 보니 저돌적인 성격으로 매우 거칠었던 성격의 소유자 였지만 승려가 되면서 산사에서 수행을 많이 하다 보니 차분한 성격에 사물의 관찰력과 산수를 바라보며 감성적인 성격으로 변모하고 참선을 많이 하다 보니 공부는 못 했지만 남들이 느끼지 못한 글들이 떠 올라 그동안 5권의 시집을 발표한 시인이며 염불 인간문화재 이시기도 하다. 3천개의 바람꽃은 본인이 피우지 못한 마음을 기도중에 이승과 지옥을 넘나드는 과정을 지옥 속에서 흐느끼는 과정을 쓴 것이란다. 작곡가 박토벤(박현우)씨는 합정역 5번추구로 너무나 잘 알려진 원로 베테런 작곡가로 한국영화 음악가협회 이사장으로 그동안 1.000편을 작곡한 작곡한 작곡가로 태산스님과 더욱 돈득한 유대관계로 앞으로 같이 할 것을 약속했다. 삼천개의 바람꽃 시 세월의 흔적 겹겹이 쌓이고 쌓인 가슴에 바람꽃 그대와 가고픈 그곳은 널 다시 만나려고 이렇게 몸부림쳤던가 억겁 속에 태어나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빈 자리가 아름다운 동행이 따습고 서럽게 울던 날들아 어듬 속에 숨죽여 피었구나 창문에 비추어진 무심한 등불은 삶이 힘겨울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삶이 느슨해 찾아온 그 많은 인연 중에 삶이 깨우쳐 주는 솟대 같은 기다림은 주머니 없이 홀로 떠난 길이다 삼천 겁의 꽃비가 하늘과 바닷바람이 되어 저세상 아래엔 휘파람 소리만 가득하네 바람 같은 세상은 어떠한지 둘러 보라 하네 잊고 있다가 들어왔던 그곳이 얼떨결에 따라나선 이정표가 나를 달래는 시간이라 말하네 너를 만나기 위해 억겁의 시간을 보냈구나 뉘를 탓하리, 홀로가는 그 길은 무거운 짐 훌 훌 벗고 광영(光營)의 터전으로 발길 잊힌 그곳에 머물러 유월, 청산에 떨림이 아름답다 하네. 작사/ 태산 작곡 / 박토벤 노래/ 강달님 삼천개의 바람꽃 1 세월의 흔적 겹겹이 쌓이고 쌓인 가슴에 바람꽃 그대와 가고픈 그곳은 널 다시 만나려고 이렇게 몸부림쳤던가 억겁 속에 태어나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빈 자리가 아름다운 동행이 따습고 서럽게 울던 날들아 어듬 속에 숨죽여 피었구나. 2 억겁 속에 태어나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빈 자리가 아름다운 동행이 따습고 서럽게 울던 날들아 어듬 속에 숨죽여 피었구나. 어듬 속에 숨죽여 피었구나.
-
인생의 안내자를 만나다인생의 안내자를 만나다 인생길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원인을 알기 어려운 이상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 힘든 경우도 있고 현대의학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고난을 겪게 될 때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삶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어 올바른 삶의 길로 인도하는 웅천 마음선원 무진(속명: 김 정희)원장을 만났다. 무진 원장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상한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차렸다. 주변 사람들이 아플 때 손으로 아픈 곳을 만지거나 기도해 주면 곧 치유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계속되자 무진 원장은 영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영성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조상신과 동행하여 온다고 한다. 조상신이 인간에게 동행하여 온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조상신들은 변한 세상을 알고 싶고, 변한 세상 받아들이고 조상신들은 조상계로 돌아간다. 그러다 경험해야 할 세상 공부가 있으면 또다시 윤회하여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 윤회하고자 하는 조상신들은 살아생전 깨어있는 정신을 가진 고급 조상들이다. 그러니 조상계에서 필요로 한 공부가 있다고 결정되면 필요로 한 모든 종목을 판을 짜서 인간으로 환생한다. 조상신들은 경험하고자 인간으로 윤회 하였는데, 방구들 짊어지고 참선이나, 명상 등은 가당치 않다고 말한다. 종교계에 있는 경전 읽는다 해서 좋아 하겠는가 하고 반문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러 인간으로 환생 했는데 똑 같은 것을 반복한다면 천신은 잘 하고 있다고 하겠는가! 새로운 단어를 알고 싶고, 변한 세상 알고 싶어 인간으로 윤회하였는데 한 곳에서 참선이나 하고 명상을 하니 인간들 마음이 답답함을 가지게 만든다. 영성공부는 조상신을 잘 이용하고 우주여행을 자유롭게 하고 자신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길을 안내하고 종국에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무진 원장이 원하는 것은 하늘의 기운을 나누어 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왜 사람이 태어났는지도 스스로 알게 되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도 깨닫게 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게 되어 불만이 없어지고 현재 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불만이 사라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영성 공부를 통하여 내면의 기운을 읽어내고 각자의 적절한 사명을 알아낼 수 있다. 우주의 기운으로 태어났기에 우주의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깊은 도력의 무진 원장 영적인 공부를 하고자 하는 천신제자들은 처음에 잘 모를 때는 우선 시키는 대로 다 해보야야 한다. 이리하여 아더매치유 단계를 거쳐 혹독한 시련을 겪어 내야 영적 체험도 수없이 하고 인간이 활동하는 문이 닫히는 경험까지 직접 하게 된다. 하늘과 우주의 정보를 알아내는 원리를 알게 되고 나중에는 말할 수 없는 엄청난 보상을 받기도 한다. 영성공부는 해마와 편도체 사용하는 법을 개발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경험과 원리를 통하여 이 시대에 맞는 공부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영성공부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천어를 배워야 하는데 천어는 신(aura)의 언어로써 영성 공부와 천부경 공부의 시작이며 자신의 깊은 내면과 소통하는 언어이다. 천어를 통해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도하고 긍정적인 행동변화를 이끌어 내어 삶을 크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무진 원장과 나정찬 대기자 인터뷰 천어는 자신의 깊숙한 내면에 들어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하고 안내자까지 붙여 주어 천어로 하는 소통을 돕기도 한다. 나아가 정신세계를 다루는 각 분야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면세계의 치유를 맡기도 한다. 천어를 기록하는 천서가 있는데 천서는 신의 글로써 인간 내면의 에너지가 형상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3차원과 4차원의 소통하는 연결고리라 할 수 있다. 무진 원장을 통해서 천어와 천서를 배우게 되면 기도와 내면과의 대화가 원활해져 스스로 하늘과 우주와의 소통이 이루어져 남의 도움 없이 인생의 제반사를 처리하고 삶의 이치를 터득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거나 상담도 해주고 인생의 안내자 역할도 할 수 있게 돤다. 명관선생의 음악 컨설팅 무진 원장은 깨닫고자 원한다면 깨달으려고 고민하지 말라 한다. 더 나아가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깨닫고자 하는 마음은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깨닫지 못하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많은 상처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깨달음은 치유로 들어가는 것이며 자신의 내면을 아는 것이며 자신을 찾는 것이다. 우주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생각이 닫히며 자신을 찾을 수 없으며 스스로 어느 경지인지 모르게 된다. 깨달음은 하늘의 평가를 받는 것인데 깨달음은 보는 사람의 수준마다 다르기에 깨닫는 것은 어느 한이 없는 것이며 우주 공간에 있는 어떤 것을 읽어가는 수준이며 열두 가지 하늘의 은사를 결국 받는 것이다. 열두 가지 은사를 받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깨달음의 맛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알게 되며 스스로 사람을 치유하고 마음을 바꿔주는 일을 하며 무엇이든 화두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영의 세계의 문을 열어 줄 수 있는 차원이 되며 말로 하거나 생각만 갖고도 상대방에게 천기를 내려주는 위치에 있는 것이며 우주 만물의 조화를 점검할 수 있으며 천부경의 조화를 알게 되며 이미 준비되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며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며 항상 깨어있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우주에서 한쪽을 떼어다 놓은 것처럼 소우주가 되는 것이며 신명을 알려고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며 하늘의 조화를 아는 것이다. 깨달음은 인간이 얻고자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원장은 말하며 하늘의 도움없이 깨달음은 없다고 조언한다. 천어와 천서를 잘 활용하여 해마에 있는 정보를 잘 활용하는 자가 깨달을 수 있다 말한다. 웅천마음선원에서는 이렇게 인간의 영적 세계의 성장과 확장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체적 질병 치료도 특별한 비법으로 해결해 주며 인간의 사명을 일깨워 주고 행복한 삶의 길을 찾기 위한 안내를 해주고 있다. 웅천마음선원 연락처: 02-955- 4922 주소: 서울시 도봉구 도봉 1동 5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