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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요지경으로 열풍을 일으킨 신신애의 “엄마의 꽃”을 불러 화제세상은 요지경으로 열풍을 일으킨 신신애의 “엄마의 꽃”을 불러 화제 해학과 풍자의 “세상은 요지경” 열풍을 일으켰던 탤런트 겸 가수 신신애가 요즘 시인 류인순 작사 박현우 작곡의“엄마는 꽃이야” “몽땅 내 사랑”을 불러 화제가 되고 있다. “엄마는 꽃이야” 류인순 작사, 박토벤 작곡, 신신애 노래 1절 엄마의 정원에는 늘 꽃이 펴 수줍은 채송화가 지고나면 영원을 묘사하는 백일홍 검붉은 맨드라미는엄마의 사랑의 절정, 지기도 전에 코스모스가 아련히 피어 엄마에게도 숨은 사랑 있었지 다가가지 않았던 아슬한 사랑 꽃 속에 서 있는 엄마는 여자 추억을 먹으며 자기가 여자인 줄 꽃인 줄도 모르는 여자 엄마는 꽃이야 언제나 꽃이야 2절 엄마의 사랑의 절정 지기도 전에 코스모스가 아련히 피어 엄마에게도 숨은 사랑 있었지 다가가지 않았던 아슬한 사랑 꽃속에 서 있는 엄마는 여자 추억을 먹으며 자기가 여자인 줄 꽃인 줄도 모르는 여자 엄마는 꽃이야 언제나 꽃이야 몽땅 내사랑 류인순 작사, 박토벤 작곡, 신신애 노래 1절 내사랑을 꾹꾹 눌러서 당신에게 몽땅 드려요 사랑이란 저울처럼 똑같아야 사랑이지 한쪽으로 기울면 안돼 두 마음 하나 돼야 해 당신도 나만 사랑하세요. 나도 당신 하나뿐이야 그런 사랑 당신과 나누고 싶어 영원히 살고 싶어 당신 사랑도 몽땅 털어서 나에게 주세요. 내 사랑 몽땅, 네 사랑 몽땅 ,몽땅 섞어서 사랑은 하나야, 둘이 아니야, 몽땅 내 사랑 2절 내 사랑을 꾹꾹 눌러서 당신에게 몽땅 드려요 당신 사랑도 몽땅 털어서 나에게 주세요. 사랑이란 저울처럼 똑같아야 사랑이지 한쪽으로 기울면 안돼 두 마음 하나 돼야 해 당신도 나만 사랑하세요. 나도 당신 하나뿐이야 그런 사랑 당신과 나누고 싶어 영원히 살고 싶어 내 사랑 몽땅, 네 사랑 몽땅 ,몽땅 섞어서 사랑은 하나야, 둘이 아니야, 몽땅 내 사랑 신신애는 고려대학교 간호학 학사 출신으로 MBC 공채 9기 탤런트로 TV 영화 등에 출연 사랑을 받던 차 1993년도 경 “세상은 요지경 노래로 세상을 들먹이는 열풍으로 가수로도 인정을 받아 다시 노래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작곡가 박토벤은 1968년 은방울 자매의 ‘포항 아가씨’로 작곡 데뷔했으며, 그 외에 여러 곡을 작곡한 경력 51년의 트로트계의 베테랑 작곡가다. 트로트앨범을 비롯해 영화 OST 70여 곡 등 총 1,500여곡을 작곡했다. 김상희의 ‘사랑했던 까닭” 에’,정훈희’의 “스잔나’ 등 히트곡을 탄생시켰으며 전국 노래 자랑에서 오랫동안 심사를 했고, 60 여년간 음악을 하면서 자연농원(현재 용인 애버랜드)악단장으로 누부신 활동을 했다. 그러자 MBC TV 놀면 뭐하니 프로에서 개그맨 유재석이 직접 사무실로 찾아와 이건우씨 작사한 합정역 5번출구 작곡을 의뢰해서 카메라가 보는 앞에서 15분만에 작곡을 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래서 유재석이 감탄해서 박토벤 이라고 불러 닉네임이 탄생해 지금도 국민들이 박토벤 이라고 부른다. 놀면 뭐하니에서 콤비 작곡가와 익살스런 연기로 국민들이 열광하는 스타 작곡가로 탄생했다 또한 2019년 2020년 MBC 연예 대상에서 작곡가 ( 박토벤) 작편곡가 (정경천) 정짜르트 작사가(이건우)등이 토크상 2번 받기는 건국이래 처음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토벤은 지금도 동묘역 작곡 사무실에서 계속 작업중에 있어 아직도 그 열정은 20대 처럼 왕성한 열정에 숙연해 진다는 후배들의 중론에 국민들이 열광하는 곡을 기대하면서 손모아 건승을 빈다.(박현우 작곡 사무실 02) 2253-0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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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경호처 차장 병무청장으로 승진… “귀틀막 처사”사진=대전충남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김종철 대통령경호처 차장을 신임 병무청장으로 임명했다. 대통령경호처는 대통령 과잉 경호로 최근 입틀막(입을 틀어 막는다) 논란을 불러온 곳이다. 경호처 차장은 경호처장 바로 아래의 책임자 자리다. 병무청장으로 임명된 김종철 차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예비역 육군 소장 출신이다. 대통령실은 “30여 년간 군에 복무하면서 합참 작전기획부장과 국방대 총장 등을 역임한 국방 행정 및 군사 전문가”라며 “경호처 차장으로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경호 프로토콜 재정립과 국방부, 합참 등 유관기관과 협력 업무를 꼼꼼하게 처리해왔다”고 밝혔다. 대통령경호처는 입틀막 논란을 불러온 조직이다. 지난 1월 강성희 진보당 국회의원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에서 경호처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 퇴장당했으며, 지난해 2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이 경호처 직원들에 의해 퇴장당했다. 진보당 소속의 김선재씨는 2월 한국과학기술원 입구에서 사전 선거운동을 하다가 경호처에 의해 퇴장당했다. 같은 날 카이스트 졸업생 신민기씨(당시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 역시 졸업식장에서 강제 퇴장됐다. 이와 관련해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은 미디어오늘에 “입틀막 경호에 대해 어떤 입장 표명이나 사과도 없는 상황에서 당사자가 승진됐다고 하니 당황스럽다”며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은 국정 기조 전환을 명령했는데, 대통령실은 이를 이행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2일 브리핑에서 “경호처는 과잉 경호, 심기 경호로 ‘입틀막’ 논란을 일으키며 국민들의 지탄을 받은 곳”이라며 “책임자를 경질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1급인 김종철 차장을 차관급인 병무청장으로 승진시켜준 셈”이라고 했다. 강 대변인은 “국민의 입과 표현의 자유를 틀어막은 행패를 일벌백계해도 모자랄 판에 시혜성 영전을 감행하는 건 총선 민의를 무시하는 귀틀막 처사”라며 “입틀막 심기 경호가 오히려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다. 국민들을 상대로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입틀막 국정 기조를 앞으로도 고수하겠다는 무도한 선언과도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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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지는 부정선거 정황, 4.10 총선 수사촉구 국민이 나섰다.- 쏟아지는 부정선거 정황, 4.10 총선 수사촉구 국민이 나섰다. - 4.10 총선 인천 계양구 3회 연속 로또복권 당첨 될 확률 5핵4천35경분 통계학 사전선거 결과? 2024년 4월 27일 오후 2시에 부정선거부패방지대가 주관한 용산 전쟁기념관 앞 인도에서 집결한 3,000여 명의 분노한 국민은 둑이 터진 홍수처럼 범람하는 4.10. 총선 부정선거 증거들을 성토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즉시 수사를 촉구하는 국민보고대회를 가졌다. 햇볕이 가득한 4월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 앞 인도에 마련된 집회 장소로 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애초 500~60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고 마련된 시위 장소가 1시 30분에 꽉 메워지고 계속 도착하는 시민들로 2시경에는 인근의 인도까지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날 집회의 주제는 점점 드러나는 부정선거 및 부실 선거의 사례들과 증거들을 국민과 대통령께 보고하고 대통령의 수사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첫 연사로 나선 부방대 사무총장 박윤성 박사는 4.10 총선에서 적발된 현실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발생하거나 나타날 수 없는 가짜투표지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이번에 비정상적이고 부실한 투개표 관리 절차를 바로잡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자유선거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일갈하며 온 국민의 참여를 호소하였다. 둘째 연사로 무대에 오른 한미연합교회 이동호 목사는 이번 선거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니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사전선거 승률과 본 선거 결과가 나왔다며, 수억 분의 일이라는 통계적 확률이 이번 4.10. 총선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정상적인 투표에서는 불가능하며 반듯이 인위적 조작이 개입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어서 정철권 경기부방대 위원장은 개표방송의 시간적 발표된 개표투표지수 오류를 지적하였고, 김정규 인천부방대 부위원장은 인천에서 발견된 투표함의 봉인지 훼손 및 변조, 심지어는 봉인지 분실의 사례를 발표하였다. 전반부 끝 연사로 무대에 오른 이봉규TV의 이봉규 박사는 윤석열 정부가 3년 남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데 최우선의 과제는 온갖 분쟁의 대상이 되어온 선거관리 절차를 정상화해서 온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신뢰받는 선거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참석자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집회 후반부에 나선 민경욱 전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발견된 인천 계양구 4.10총선 사전 선거의 결과를 로또 3회 연속 당청 될 확률 5핵4천25경분의 확률적인 상상할 수 없는 통계적 결과를 주장하며 여러 가지 선거 부정의 정황과 구체적 사례와 증거들을 일일이 설명하며, 왜 수사가 필요한지 설득력 있는 논지를 펼쳤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황교안 전 총리는 이번에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선거 부정을 바로잡지 못하면 26년, 27년, 28년 다가올 모든 선거에서 기형적이고 인위적인 조작이 난무하는 선거가 고착화되어 대한민국 자유선거와 자유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고 경고하며, 이를 위하여 국민이나 시민단체들뿐만 아니라 이번에 선거 부정의 피해로 낙선한 후보자들이 직접 나서야 하고 정당들도 목소리를 높여 선거 정상화 싸움에 동참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특히 제소 기한인 5월 10일까지 낙선한 후보자들과 선거에 참여한 정당들이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면 온 국민의 뜻을 모아서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번 총선의 전반적인 정황을 볼 때, 전국 방방곡곡에서 발견된 선거 부정의 사례와 증거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한 경찰, 검찰의 선관위에 대한 대대적 수사 지시만이 진실을 파헤칠 유일한 길이 되었다며 윤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였다. 끝으로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선거 정의를 되살려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대통령으로 청사에 남기를 바란다며 마무리 지었다. 이날 전쟁기념관 앞 집회 후에, 참석자들은 삼각지 교차로부터 용산역까지 시가행진하며, 시민들에게 4. 10. 총선의 선거 부정 사례를 알렸다. 박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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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尹제안에 화답한 李 환영”용산 대통령실 청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대통령실의 “포괄적 대화” 방식의 영수회담을 수용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남이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이다. 양측은 이날 오전 영수회담 개최 준비를 위한 3차 실무회동에서 회담 일정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영수회담을) 오랜만에 하는 거라 (의제를) 정리하고 미리 상의해야 하는데 그조차도 녹록하지 않은 것 같다”며 “다 접어두고 윤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밝혔다. 이는 대통령실이 역제안한 ‘자유로운 형식의 회담’을 수용한 것이다. 이 대표는 “대통령을 만나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며 “대통령께서도 국민들의 어려운 상황, 총선 민의를 잘 들어주시고 어떻게 하면 난국을 타개할지 함께 고민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의 회동 제안에 화답한 이재명 대표의 뜻을 환영한다”며 “일정 등 확정을 위한 실무협의에 바로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과 천준호 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은 이날 오전 3차 실무회동을 열기로 했다. 권혁기 당대표 정무기획실장은 이날 회동에서 날짜와 회담 방식을 정하냐는 질문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밝혔다. 양측이 의지만 있다면 이번 주말, 늦어도 내주 초에서 영수회담이 열릴 전망이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개최를 준비하기 위한 실무회동이 2차 회의도 영수회담 준비 방식을 두고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종료됐다. 핵심은 영수회담을 대하는 양측의 인식 차이였다. 민주당은 채상병 특검법,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등 의제를 제시하고, 주요 의제에 대한 합의를 한 후 만나자는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각론에 대해 입장을 확인하고 협의하는 것은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 제기한 의제에 대해 “포괄적으로 수용”할 테니 우선 만나자는 입장이다. 영수회담 준비 방식에 대한 차이는 이번 영수회담에 대한 양측이 생각하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 자체에 의미가 있으니 ‘톱다운’(top-down) 방식의 회담을 제의했다. 여당의 이번 4·10 총선 패배 후 소통 행보에 주력하는 윤 대통령에게는 영수회담 자체가 협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인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날 “의제들에 대해 수용, 불수용, 반수용, 부분수용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법적인 문제도 있고, 구체적인 사안별로 접근하고 만난 영수회담의 사례도 없다”고 밝혔다. 또한 “대통령께서는 모든 것을 다 경청할 생각을 가지고 계시고, (회담 후) 결과는 대통령실, 민주당, 국민의힘이 해야 할 역할을 나누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영수회담이 보여주기식이 아닌 실질적인 성과가 있어야 하니 ‘바텀업’(bottom-up) 방식의 회담을 강조했다. 171석의 거야 수장인 이 대표는 이번 총선의 민심을 대표해야 하는 만큼 회담의 ‘결과’가 중요하다. 영수회담 자체가 야당 대표가 대통령의 ‘공간’을 찾아가서 만나는 형식이기 때문에 지지자들의 기대치를 일정부분 채울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전날 “검토가 가능한 부분을 얘기해야 서로 양보하고 조율할 것이 정해지는데 어떻게 당일 만나서 다 이야기를 하나”라며 “역대 영수회담이 ‘열심히 추진하기로 했다’고 끝나는데 그것은 (대통령이) 야당 대표 만났다는 좋은 모양새만 남기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의 제안을 이 대표가 대승적으로 수용한 모양새를 갖추었고,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의 회동 제안”을 강조하면서 이번 회담이 엄밀하게 윤 대통령이 먼저 제안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주도권 확보에 팽팽한 긴장감을 보였다. 한편 신평 변호사는 이날 이 대표 측에서 먼저 회담을 제안했으며 이를 자신이 대통령측에 전달해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신 변호사는 이날 오전 YTN라디오 뉴스킹과의 인터뷰에서 “얼마 전에 이 대표의 측근 중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 영수회담에 관한 뜻을 전달해 달라고 저한테 부탁을 했고, 제가 대통령실에 이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한 “처음 민주당 쪽에서는 처음에 만나서는 총리 인선에 관한 협의를 가볍게 한 다음에 이때 생긴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그 회담을 이어나가면서 더 깊숙한 논의를 진행하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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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자본? 동의 못해" 민희진, 예견된 '탈 하이브'?…방시혁 의장의 하이브가 산하 레이블 어도어(ADOR) 민희진 대표 등의 '탈 하이브'를 시도한 정황으로 인해 민희진 대표 및 경영진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 가운데, 민희진 대표의 과거 발언이 재조명 되고 있다. 22일 하이브 감사팀은 어도어 경영진이 대외비인 계약서를 유출하고, 하이브가 보유하고 있는 어도어 주식을 팔도록 유도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민희진 대표와 어도어 경영진 A씨 등에 대한 감사권을 발동했다. 감사팀은 어도어 경영진 업무 구역을 찾아 회사 전산 자산을 회수했고, 대면 진술 확보 등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브는 민희진 대표의 사임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으며, 확보된 전산자산 등을 토대로 필요시 법적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어도어는 지난 2021년 하이브가 자본금 161억 원을 출자해 만든 회사다. 어도어에는 그룹 뉴진스가 소속돼 있다. 뉴진스는 데뷔하자마자 '하입 보이(Hype)', '어텐션(Attention)', '오엠지(OMG)', '디토(Ditto)' 등 연이어 히트곡을 내며 열풍을 일으켰다. 이에 어도어는 지난해 매출액 1102억 원, 영업이익 335억 원, 당기 순이익 265억 원을 기록했다. 현재 민희진 대표는 어도어 지분 18%(57만 3,160주)를 보유해 2대 주주다. 지난해 1분기 하이브는 어도어의 지분을 100%에서 80%(257만 6,000주)로 줄였다. 당시 민희진 대표는 우선매수권(콜옵션)을 행사해 하이브로부터 지분 18%를 11억 원 가량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지분 2%도 어도어의 다른 경영진이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진스의 컴백을 내달로 공식한 상황에서 민희진 대표와 어도어 경영진의 독립 시도 정황이 포착된 터라 뉴진스 컴백에 차질이 빚을까 우려된다. 그런 가운데 민희진 대표가 지난해 1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민희진 대표는 "창작과 경영이라는 서로 상반된 영역에서의 몰이해로 인한 충돌을 많이 목격했다. 계획 없는 무분별한 지출과 소비는 결코 좋은 창작물과 사업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쉽게 '하이브 자본'을 외치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가 안되는 표현이다. 투자금이 결정돼 투자가 성사된 이후의 실제 세부 레이블 경영 전략은 하이브와 무관한 레이블의 독자 재량이기도 하거니와 난 당시 하이브 외에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 제안을 받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시 내게는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었고, 투자처가 어디든 '창작의 독립', '무간섭'의 조항은 1순위 였을 것이라 사실 꼭 하이브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고 했다. 이 같은 민희진 대표의 발언에 일각에서는 이미 '탈 하이브'를 예견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며, 네티즌들은 "투자받고 성공하니 모든 게 다 내가 잘해서라는 건가", "하이브 자본 없이 뉴진스가 이렇게까지 대형 그룹이 됐을까", "그럴 거면 처음부터 투자받을 때 독립한다고 조건을 붙였어야지" 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민희진 대표는 2002년 SM엔터테인먼트에 공채로 입사해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엑소, 레드벨벳, NCT 등 비주얼 디렉터로서 앨범 콘셉트 등을 총괄했다. 그는 2018년 퇴사한 후 하이브로 이적해 하이브 레이블 어도어 대표직을 맡으며 걸그룹 뉴진스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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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늘 함께하는 최예연 원장행복과 늘 함께하는 최예연 원장 사람들은 평생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간다. 평탄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에 처하여 평생 허덕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의 질병이나 고난으로 함께 고통을 인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 등 이런저런 이유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웃음꽃 만발한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기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고 늘 재능 기부를 30여년 하시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본인도 행복한 삶을 견지 하며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크게 기여하는 분이 있어 소개한다. 최예연 원장은 주로 서울, 경기지역에서 경기소리 민요, 춤으로 봉사활동을 하는데 한마음 예술단을 이끌며 오랜 봉사활동과 수준 높은 공연으로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은 춘천시가 돤 옛 춘성군의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할 수 있는 시골에서 태어나 십리도 더 떨어져 있는 금병초등학교를 힘들게 졸업했고 체육특기자로 유봉중학교까지는 다녔으나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접어야 했다. 그 후로 공부에 대한 열정은 있었으나 가정 형편이 안 되어 계속 미루어 오다 우연히 “열린 문 사회복지센터”에서 무료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학업을 이어가게 되었다. 과정을 마치고 결국 검정고시를 통해 방송통신대 교육학과도 졸업하고 국제디지털대학교 사회심리학도 마쳤다. 졸업후 복지센터에서 교사로서 봉사를 하면서 ‘경기 소리’를 배우고 부채춤 등 고전 무용도 함께 배웠고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게 된 후에는 양로원 등 복지센터에서 공연 봉사를 시작하였다. 이 곳 저 곳 공연 봉사할 기회가 늘어나게 되자 보다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난타, 검무 등을 배워 선보이게 되었다. 남 앞에서 공연한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보니 부단히 노력하여 수준 있는 기예를 보여주어야 했기에 엄청난 노력을 하여야 했다. 젊어서 너무 고생을 하여 몸이 좋은 상태가 아니어서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했다. 다행히 좋아서 하는 일이라 여러 난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요양원 환우들의 뜨거운 반응이 있고 기다리는 얼굴들이 선하여 멈출 수가 없었고 하다 보니 어느덧 30 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마음 예술단”의 10여명의 단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나눔 봉사를 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늘 행복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구경하는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단원들도 꾸준히 무대를 위한 연습을 같이하고, 보다 수준 높은 공연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고 공연할 때 모두가 하나 되는 순간을 맞이할 때는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수시로 공연 봉사를 다니는 것을 보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가 보다.” 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여유로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많은 봉사자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를 극복해 가며 함께 행복한 순간을 갖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최 원장은 남편 김영동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가 있고 때로는 공연에도 함께 해 주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부군은 특히 에어로폰(전자 섹스폰) 연주로 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기도 한다. 최원장은 처음에는 복지관등에서 소리와 춤을 지도하였는데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시간만으로는 소리와 춤을 제대로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연습량이 많아야 하는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여건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어려움을 감내하며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봉사를 다니고 함께 나누는 행복을 누리며 행복해 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소리와 고전 무용은 기본으로 하고 난타나 사물놀이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지금은 검무를 열심히 익혀 보는 이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려고 하고 있다. 고양시 비룡정사 보인 스님이 지도하는 검무 교실에 참여하여 정말 열심히 하는데 육체 및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작년 7월에는 서울 종로 5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검무 공연을 하여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은 바 있다. 검무가 관객에게 뜨거운 호응을 가져 올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남편의 병수발과 자신의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연히 배우게 된 소리와 춤이 최 원장의 운명을 기적같이 바꿔놓았다. 노래와 춤이 나누는 봉사를 하게 만들었고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어떤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를 물어야 한다. 최원장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사회는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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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가수로 노래교실 강사로 활약중인 톡톡튀는 강은비 선생 그녀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꽃과 희망이 나래를 편다.사랑받는 가수로 노래교실 강사로 활약중인 톡톡튀는 강은비 선생 그녀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꽃과 희망이 나래를 편다. 항상 새롭게 정력적인 활동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가수 강은비 그는 오늘도 새벽에는 뛰고 이어 남편과 자녀들에게 아침밥을 지어 챙기고 출근을 시키고 저녁이면 퇴근까지 시킨다. 이렇게 현모양처로 가정주부의 자리를 지키며 여기저기 노래 강사에 검무를 배우는등 그 외 장구, 다른 악종 악기를 배우는 숨가쁜 시간과 공간속에 저물어 가는 나날 보내면서 여기서 행복을 만끽하는 노래 강사 강은비. 이렇게 불행한 삶을 거부하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 노래 교실 강사를 만나 본다. 강은비(본명 김도경)는 고양특례시, 파주시, 김포시, 서울 서부 지역등에서 이름난 노래강사다. 감성이 풍부하고 호소력 있는 가수로서 수많은 노래대회에서 대상을 받거나 상위권에 입상한 경력으로 가수 실력은 일찍이 입증 되었지만 본인은 노래 강사로서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다. 지금은 현재 하는 일에 아주 만족하고 행복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수없는 난관을 해결해야만 했다. 어려서부터 노래 잘하기로 소문이 나서 학교 학예회 발표나 행사가 있으면 단골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러 인기를 독차지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가수가 되는 것을 집안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몰래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다니며 노래를 배워 실력을 키워 나갔지만 공개적으로는 노래를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힘들기만 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되어 이제는 달라지려나 기대했으나 변한 것은 없었다. 시댁도 완고한 유교 집안이라 여자가 밖에 나도는 것을 싫어했고 더군다나 무대에 서서 활동하는 것은 더더욱 용납이 안되었다. 그런 와중에 도회생활에서 시골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농촌 일을 하는 것이 낯설기만 했고 힘든 나날이 계속되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며느리로서 농촌 일을 거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일이 손에 도저히 익지 않아 모든 일이 너무나 힘들 뿐이었다. 돌아오는 것은 일 못한다는 꾸중뿐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는 있었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 계속되었다. 안 되겠다 싶어 결국 시어머니와 힘든 담판을 지어 노래 강사가 되는 길을 가기로 허락받았다. 노래에 소질이 있어 가수의 길도 생각해봤으나 지방공연 등 집을 비워야 하는 일이 잦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 접기로 했다. 하지만 그동안 집안 몰래 꾸준히 노래를 연습하여 크고 작은 가요제에 참가하여 대상, 또는 1등상 등을 수없이 받으면서 꾸준히 노래 실력을 키워 왔다. 본격적으로 노래강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마쳤다.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노래강사 자격증,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여 노래를 가르치는 일에 뛰어 들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노래 한 곡을 새로 만나면 이 노래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금방 생각이 떠올랐다. 곡 분석, 발음 하는 법에서부터 한 소절 한 소절 음정 박자를 정확히 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감정 이입시키는 법등을 지도하다 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갔고 노래에 따라 변용하는 법을 제시하여 노래를 보다 맛깔스럽게 호소력 있게 부르는 법을 가르쳤다. 간간히 난센스 퀴즈 등 재미있는 이야기도 소개하여 노래 수업에 재미를 더했다. 학생들이 계속 늘어나고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더 이상 부러울 것이없었다. 노래 교실을 여러 군데서 하고 있어 이리 저리 먼 길을 오가야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하고 있다. 노래를 부르고 지도하면서 성격도 서서히 변해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상당히 직선적이어서 예전에는 사람들과 부닥치는 일이 가끔 있어 어려움이 있었는데 많이 부드러워졌다. 특히 고양시 대자동에 있는 비룡정사에서 노래교실을 열며 보인 스님과 인연이 되어 법문도 듣고 상담도 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되고 나아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래의 소중함을 새로운 차원에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노래 한 곡에 귀한 부처님의 법문이 들어 있고 인생이 녹아 있음을 알게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을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절감하니 하는 일이 신이 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소중하여 함부로 대할 수가 없고 모두가 귀한 인연이라 여기고 오랜 만남을 이어가며 행복한 삶을 계속할 것이다. 강은비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파주지역에서 많이 하는데 주간보호센터 등에서 어른신들을 모시거나 돌보는 일을 한다.노래를 불러 드리거나 목욕, 식사 시중을 거드는 등 다양한 일을 하는데 소소한 일 같지만 어른들이 만족해 하시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본인도 보람을 느끼며 이런 게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몇 년 전 부터는 재능 기부 봉사단을 이끌고 이 곳 저 곳 찾아가는 가요 콘서트를 열고 있다. 주로 경기 지역에서 활동하지만 때로는 경상도 전라도 등 먼 곳까지 진출하기도 한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출연하거나 사회자로서 활동하는데 관객들을 적극 참여시켜 모두가 어우러지는 한마당이 수시로 펼쳐진다. 한바탕 신나게 놀다보면 누가 출연자고 관객인지 잊게 된다. 혼연일체가 되어 흥겹게 노래하거나 춤추게 만드는 것은 사회자로서의 강은비의 힘이 엄청남을 실감하게 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이 곧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노래 강사 강은비를 통해 진정한 올바른 삶과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헤 보게 되고 이사회가 나아가야 할 건전한 길을 찾게 된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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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강사 강은비 인생을 노래하다노래강사 강은비 인생을 노래하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이 질문에 당당하게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사실 행복을 느끼는 것은 쉽다. 행복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그저 그런 날로 힘들게 살아들 가고 있다. 행복에 대한 생각만 바꾸면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한 사람이 있다. 불행한 삶을 거부하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 노래교실 강사를 만나 본다. 강은비(본명 김도경)는 고양특례시, 파주시, 김포시, 서울 서부 지역등에서 이름난 노래강사다. 감성이 풍부하고 호소력 있는 가수로서 수많은 노래대회에서 대상을 받거나 상위권에 입상한 경력으로 가수 실력은 일찍이 입증되었지만 본인은 노래강사로서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다. 지금은 현재 하는 일에 아주 만족하고 행복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수없는 난관을 해결해야만 했다. 어려서부터 노래 잘하기로 소문이 나서 학교 학예회 발표나 행사가 있으면 단골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러 인기를 독차지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가수가 되는 것을 집안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몰래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다니며 노래를 배워 실력을 키워 나갔지만 공개적으로는 노래를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힘들기만 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되어 이제는 달라지려나 기대했으나 변한 것은 없었다. 시댁도 완고한 유교 집안이라 여자가 밖에 나도는 것을 싫어했고 더군다나 무대에 서서 활동하는 것은 더더욱 용납이 안되었다. 그런 와중에 도회생활에서 시골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농촌 일을 하는 것이 낯설기만 했고 힘든 나날이 계속되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며느리로서 농촌 일을 거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일이 손에 도저히 익지 않아 모든 일이 너무나 힘들 뿐이었다. 돌아오는 것은 일 못한다는 꾸중뿐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는 있었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 계속되었다. 안되겠다 싶어 결국 시어머니와 힘든 담판을 지어 노래 강사가 되는 길을 가기로 허락받았다. 노래에 소질이 있어 가수의 길도 생각해봤으나 지방공연 등 집을 비워야 하는 일이 잦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 접기로 했다. 하지만 그동안 집안 몰래 꾸준히 노래를 연습하여 크고 작은 가요제에 참가하여 대상, 또는 1등상 등을 수없이 받으면서 꾸준히 노래 실력을 키워 왔다. 본격적으로 노래강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마쳤다.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노래강사 자격증,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여 노래를 가르치는 일에 뛰어 들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노래 한 곡을 새로 만나면 이 노래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금방 생각이 떠올랐다. 곡 분석, 발음 하는 법에서부터 한 소절 한 소절 음정 박자를 정확히 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감정 이입시키는 법등을 지도하다 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갔고 노래에 따라 변용하는 법을 제시하여 노래를 보다 맛깔스럽게 호소력 있게 부르는 법을 가르쳤다.간간히 난센스 퀴즈 등 재미있는 이야기도 소개하여 노래 수업에 재미를 더했다. 학생들이 계속 늘어나고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노래 교실을 여러 군데서 하고 있어 이리 저리 먼 길을 오가야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하고 있다. 노래를 부르고 지도하면서 성격도 서서히 변해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상당히 직선적이어서 예전에는 사람들과 부닥치는 일이 가끔 있어 어려움이 있었는데 많이 부드러워졌다. 특히 고양시 대자동에 있는 비룡정사에서 노래교실을 열며 보인 스님과 인연이 되어 법문도 듣고 상담도 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깊이 깨 게 되고 나아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래의 소중함을 새로운 차원에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래 한 곡에 귀한 부처님의 법문이 들어 있고 인생이 녹아 있음을 알게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을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절감하니 하는 일이 신이 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소중하여 함부로 대할 수가 없고 모두가 귀한 인연이라 여기고 오랜 만남을 이어가며 행복한 삶을 계속할 것이다. 강은비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파주지역에서 많이 하는데 주간보호센터 등에서 어른신들을 모시거나 돌보는 일을 한다.노래를 불러 드리거나 목욕, 식사 시중을 거드는 등 다양한 일을 하는데 소소한 일 같지만 어른들이 만족해 하시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본인도 보람을 느끼며 이런 게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몇 년 전 부터는 재능 기부 봉사단을 이끌고 이 곳 저 곳 찾아가는 가요 콘서트를 열고 있다. 주로 경기 지역에서 활동하지만 때로는 경상도 전라도 등 먼 곳까지 진출하기도 한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출연하거나 사회자로서 활동하는데 관객들을 적극 참여시켜 모두가 어우러지는 한마당이 수시로 펼쳐진다. 한바탕 신나게 놀다보면 누가 출연자고 관객인지 잊게 된다. 혼연일체가 되어 흥겹게 노래하거나 춤추게 만드는 것은 사회자로로서의 강은비의 힘이 엄청남을 실감하게 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이 곧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노래 강사 강은비를 통해 진정한 올바른 삶과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헤 보게 되고 이 사화가 나아가야 할 건전한 길을 찾게 된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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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76세에 고등학교 졸업 대학입학에 박사까지 꿈꾸는 만학의 꿈을 이룬 영화배우이며 무술감독 우명덕최고령 76세에 고등학교 졸업 대학입학에 박사까지 꿈꾸는 만학의 꿈을 이룬 영화배우이며 무술감독 우명덕 인기 영화배우이며 영화 무술감독,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차력의 일인자인 우명덕(76세) 할아버지가 지난 2월 9일 종로구민회관에서 진형중고등학교 졸업식을 가졌다. 특히 이날 많은 우명덕의 동료, 선배, 후배 인기 연예인들이 대거 축하하기 위해 참석해 그동안 연예계에 덕망이 있었음을 증명했고 졸업식 분위기를 밝혔다. 그런가 하면 이날 사)계수나무 장학회(회장 김상천)는 대학 입학 등록금 일체를 전달했다. 사)계수나무 장학회는 고) 김계수선생 추모를 위해 2005년 만들어져 매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수 많은 학생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합격한 백절불굴의 우명덕에게 일문 일답을 들어본다. 문) 먼저 고교졸업을 축하드리고 또 대학에 합격한 것도 축하드립니다. 답) 네 감사합니다 문)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죠 답) 1948년생 이니까 우리나라 나이로는 76세입니다 문) 초등학교는 몇 년도 어느 학교에서 졸업했는지요 답) 61년도에 고향인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있는 도경국민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문) 당시 가정형편이 어땠는가요 답) 저는 5남 3녀중 넷 째 였으며 아버님께서 일제 강점기부터 우체국에서 근무하셧기 때문에 교육도 받으신 분으로 윗대에서 물려받은 논 밭이 많아 생활 형편도 매우 좋은 편이였습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면서부터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도박과 술등으로 많은 재산을 탕진하면서 끝내는 많은 빚더미에 가족들을 데리고 야반 도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제가 초등학교를 막 졸업했던 때 였습니다 그러니까 중학교는 당연히 못 갈 현편였지요 도망간 빚쟁이가 무슨 공부를 합니까.... 문) 어디로 야반 도주했나요 답)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도망가서 단칸방에서 죽을 고생을 했지요 저는 부산 범일동에서 신문팔고 또 삼일극장 등에서 미제껌을 팔았지요 문) 서울에는 언제 어떻게 오게되었나요 답) 그 당시 어린 마음에 부산은 너무 좁고 더 넒은 서울에 가서 출세해야겠다는 야망과 야심을 가지고 무작정 가출 했지요... 아는 사람도 없는 서울에서 먹고 살게 있나요 부산서 잠시배운 신문 팔이를 종로 명동 등지에서하다 소공동에서 음식점 다방등을 돌며구두를 거두어 오는 일명 “구두닦기찝새”를 했지요 그때 그곳에서 “통아저씨”로 유명한 이양승씨를 만났지요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입니다 문) 운동은 어떻게 배우게 되었고 주먹세계는 어떻게 발디디게 되었나요 답) 그동안 객지생활을 하다보니 공부도 못했고 남에게 무시 안 당할려고 싸움이라도 잘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보다시피 키도 크지 못하고 외소해서 낮에는 일하고 저녂에는 합기도 도장에가서 열심히 다른사람 몇 배로 운동을 했습니다 제가 본래 깡다구가 쎕니다 보다시피 조그만한 눈에 독하게 생겼잖아요 그런데다 싸움을 잘하게 되니까 소문이 나서 당시 소공동 식구들이 스카웃 하여 조직 생활을 조금했지요 그러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 주먹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군에 입대 했습니다 저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못되게 하지를 못합니다 보기 보다 내 마음은 여리거든요 그후 어둠의 길에서 벗어났지요 문) 당시 최고 듀엣이였던 펄시스더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 졌나요 답) 펄시스터는 언니 배인순과동생 배인숙 자매의 듀엣이였는데 고향은 경북 포항으로 어머니 현정득 여사는 성격도 괄괄한 여걸이였습니다 당시 저는 운전도 하고 현정득여사와 함께 매니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걸 요즘은 로드 매니저라고 부르던군요 어머니는 얼마나 알뜰한지 시장에가면 채소하나도 제일 가격이 싸고 양이 많은걸 골라 골라 사오는 분이였어요 그런걸 보고 자란 배인순과 배인숙 자매는 보기보다 알뜰형 여성이었습니다 저는 같은 집 아랫방에서 생활하며 어머니 현정득 여사는 저를 아들처럼 대해 주었습니다 일본 진출할 때 까지 함께했어요 지금도 그정을 잊지 못합니다. 문) 초촐 출신으로 늦은 나이에 어떻게 중학교에 갈 용기가 생겼나요 답) 저는 초졸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대단했습니다 다른 사함들은 제가 고졸 정도는 되는 줄 알고 있었어요 제 입으로 말은 못하잖아요 특히 아이들 학교에서 부모님 학벌을 적어오라고 할 때 스트레스를 최고로 많이 받았어요 고졸이라고 거짓으로 적어야 하니까요 그런 저의 고민을 계수나무장학회 김상천 회장님께 솔직히 고백을 했어요 김회장은 당시 도전한국인운동본부 상임총재를 맡고 계셨는데 무조건 도전해보라고 강력히 권고 했지요 김회장은 세월은 물 흐르듯이 지금도 흘러 간다 가만히 있으면 맨날 그 자리인데 도전하면 몇 년 후에는 사람이 바뀐다 그러면 떳떳해지고 당당해 질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라고 강력하게 권고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진형중학교의 문을 노크하였습니다 초등하교 졸업후 58년 만입니다. 문) 고등학교 시절은 어땠나요 답) 제가 평생 그렇게 고대했던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수업시간이 너무줄겁고 고귀 했습니다 모두가 새롭고 하나하나 알아가는게 너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부족하겠지만 제 나름대로 능력껏 열심히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 문) 무슨 과목이 제일 힘들었나요 답) 수확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나이가 많으니 계산력이 생각보다 잘 안되었어요. 문) 쉬운 과목은 무엇이었나요 답) 쉬운게 어디 있겠어요... 제 입장에서는 그나마 일본어가 공부하기 좀 쉬웠어요 문) 대학 진학은요 답) 한양대학교 체육학과에 합격했습니다 문) 왜 체육학을 전공라게 되었나요 답) 나이도 있고해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해볼까 생각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잘 할 수 있고 재밋게 할 수있는거는 체육이라 생각해 결정 했습니다 체육 중에서 태권도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볼까 합니다 문)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도 진학할 생각이있나요 답) 건강이 허락한다면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도전하여 석사와 박사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일부에선 나이도 많은데 써먹을 수도 없는 공부만 해서 뭐 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인생은 공부이고 도전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제가 제일 존경하는 김상천 회장님의 말씀중 시작은 반이다 시간은 물처럼 흘러간다 도전치 않고 그냥 있으면 맨날 그 자리에 일을뿐이다 그러나 도전하면 변하고 발전하고 행복할 것이다 과감히 도전하라는 진리를 믿는다. 문) 끝으로 한 말씀하신다면... 답)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시고 지도해 주신 진형중고등하교 홍형규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의 사랑과 열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백세시대의 인생후반전을 도전과 도전을 거듭해 아름답게 끝내는 날 하늘나라에 돌아가서 하느님께 최선을 다했노라고 겸허하고도 당당하게 말씀을 드리겟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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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안내자를 만나다인생의 안내자를 만나다 인생길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원인을 알기 어려운 이상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 힘든 경우도 있고 현대의학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고난을 겪게 될 때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삶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어 올바른 삶의 길로 인도하는 웅천 마음선원 무진(속명: 김 정희)원장을 만났다. 무진 원장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상한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차렸다. 주변 사람들이 아플 때 손으로 아픈 곳을 만지거나 기도해 주면 곧 치유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계속되자 무진 원장은 영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영성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조상신과 동행하여 온다고 한다. 조상신이 인간에게 동행하여 온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조상신들은 변한 세상을 알고 싶고, 변한 세상 받아들이고 조상신들은 조상계로 돌아간다. 그러다 경험해야 할 세상 공부가 있으면 또다시 윤회하여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 윤회하고자 하는 조상신들은 살아생전 깨어있는 정신을 가진 고급 조상들이다. 그러니 조상계에서 필요로 한 공부가 있다고 결정되면 필요로 한 모든 종목을 판을 짜서 인간으로 환생한다. 조상신들은 경험하고자 인간으로 윤회 하였는데, 방구들 짊어지고 참선이나, 명상 등은 가당치 않다고 말한다. 종교계에 있는 경전 읽는다 해서 좋아 하겠는가 하고 반문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러 인간으로 환생 했는데 똑 같은 것을 반복한다면 천신은 잘 하고 있다고 하겠는가! 새로운 단어를 알고 싶고, 변한 세상 알고 싶어 인간으로 윤회하였는데 한 곳에서 참선이나 하고 명상을 하니 인간들 마음이 답답함을 가지게 만든다. 영성공부는 조상신을 잘 이용하고 우주여행을 자유롭게 하고 자신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길을 안내하고 종국에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무진 원장이 원하는 것은 하늘의 기운을 나누어 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왜 사람이 태어났는지도 스스로 알게 되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도 깨닫게 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게 되어 불만이 없어지고 현재 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불만이 사라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영성 공부를 통하여 내면의 기운을 읽어내고 각자의 적절한 사명을 알아낼 수 있다. 우주의 기운으로 태어났기에 우주의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깊은 도력의 무진 원장 영적인 공부를 하고자 하는 천신제자들은 처음에 잘 모를 때는 우선 시키는 대로 다 해보야야 한다. 이리하여 아더매치유 단계를 거쳐 혹독한 시련을 겪어 내야 영적 체험도 수없이 하고 인간이 활동하는 문이 닫히는 경험까지 직접 하게 된다. 하늘과 우주의 정보를 알아내는 원리를 알게 되고 나중에는 말할 수 없는 엄청난 보상을 받기도 한다. 영성공부는 해마와 편도체 사용하는 법을 개발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경험과 원리를 통하여 이 시대에 맞는 공부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영성공부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천어를 배워야 하는데 천어는 신(aura)의 언어로써 영성 공부와 천부경 공부의 시작이며 자신의 깊은 내면과 소통하는 언어이다. 천어를 통해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도하고 긍정적인 행동변화를 이끌어 내어 삶을 크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무진 원장과 나정찬 대기자 인터뷰 천어는 자신의 깊숙한 내면에 들어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하고 안내자까지 붙여 주어 천어로 하는 소통을 돕기도 한다. 나아가 정신세계를 다루는 각 분야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면세계의 치유를 맡기도 한다. 천어를 기록하는 천서가 있는데 천서는 신의 글로써 인간 내면의 에너지가 형상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3차원과 4차원의 소통하는 연결고리라 할 수 있다. 무진 원장을 통해서 천어와 천서를 배우게 되면 기도와 내면과의 대화가 원활해져 스스로 하늘과 우주와의 소통이 이루어져 남의 도움 없이 인생의 제반사를 처리하고 삶의 이치를 터득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거나 상담도 해주고 인생의 안내자 역할도 할 수 있게 돤다. 명관선생의 음악 컨설팅 무진 원장은 깨닫고자 원한다면 깨달으려고 고민하지 말라 한다. 더 나아가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깨닫고자 하는 마음은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깨닫지 못하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많은 상처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깨달음은 치유로 들어가는 것이며 자신의 내면을 아는 것이며 자신을 찾는 것이다. 우주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생각이 닫히며 자신을 찾을 수 없으며 스스로 어느 경지인지 모르게 된다. 깨달음은 하늘의 평가를 받는 것인데 깨달음은 보는 사람의 수준마다 다르기에 깨닫는 것은 어느 한이 없는 것이며 우주 공간에 있는 어떤 것을 읽어가는 수준이며 열두 가지 하늘의 은사를 결국 받는 것이다. 열두 가지 은사를 받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깨달음의 맛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알게 되며 스스로 사람을 치유하고 마음을 바꿔주는 일을 하며 무엇이든 화두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영의 세계의 문을 열어 줄 수 있는 차원이 되며 말로 하거나 생각만 갖고도 상대방에게 천기를 내려주는 위치에 있는 것이며 우주 만물의 조화를 점검할 수 있으며 천부경의 조화를 알게 되며 이미 준비되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며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며 항상 깨어있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우주에서 한쪽을 떼어다 놓은 것처럼 소우주가 되는 것이며 신명을 알려고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며 하늘의 조화를 아는 것이다. 깨달음은 인간이 얻고자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원장은 말하며 하늘의 도움없이 깨달음은 없다고 조언한다. 천어와 천서를 잘 활용하여 해마에 있는 정보를 잘 활용하는 자가 깨달을 수 있다 말한다. 웅천마음선원에서는 이렇게 인간의 영적 세계의 성장과 확장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체적 질병 치료도 특별한 비법으로 해결해 주며 인간의 사명을 일깨워 주고 행복한 삶의 길을 찾기 위한 안내를 해주고 있다. 웅천마음선원 연락처: 02-955- 4922 주소: 서울시 도봉구 도봉 1동 5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