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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참전영웅, 고 박동지 이등상사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

기사입력 2021.12.2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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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보 접수를 통해 경기 성남에서 발굴한 고 박동지 이등상사, 경기 파주에서‘호국의 영웅 귀환행사’
    과거 발굴한 전사자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에 대한 지속적인 재분석 노력을 통한 신원확인
    70여 년간 오매불망 고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아내는 2019년에 작고
    전사자 신원확인을 위한「유가족 유전자 시료 확보」절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6.25전사자 발굴유해 중 181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고 박동지 이등상사’의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12월 23일, 경기 파주에서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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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박동지 이등상사님 생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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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박동지 이등상사님 최초식별 현장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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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박동지 이등상사님 유품사진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는 6·25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쳤으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산야에 잠들어 계신 ‘전사자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모시는 행사’이다. 

     * 12.23.(목), 11:00 / 경기 파주 동패동 유가족 자택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한 가운데 ‘국가를 위한 헌신에 끝까지 보답’하기 위해서,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한 가운데 국유단장 주관으로 진행한다.


    귀환행사는 국유단장이 유가족 대표에게 고인의 참전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에 관해 설명하고, 신원확인통지서를 전달한 후 호국영웅 귀환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다.


    고인은 제보자 손창희(77)님의 유해소재 제보를 토대로 경기 성남지역에서 실시한 전사자 발굴을 통해 신원이 확인되었다.


    제보자는 과거 어린 시절, 부친과 함께 장작을 얻으러 인근 야산에 올라갔다가 박격포탄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사자들을 부친이 지역 무덤 형태로 직접 매장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발굴현장에서는 유해가 있던 곳에 실제로 60mm박격포탄과 수류탄이 함께 발굴되었다.


    발굴 당시 현장에서는 일괄유해의형태로 좁은 구역에 혼재되어 있던 유해를 3구로 판단하였고(2012년도), 이에 따라 유전자 검사 성공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부위를 선정하여 유전자 분석을 실시 했으나 안타깝게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2013년도)


    그 후, 유전자 분석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과거에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던 유해 중 신원확인율이 높은 시료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재분석의 필요성이 제고되었고, 이에 따라 올해 당시 발굴유해에 대한 유전자검사를 추가로 진행하게 되었다. 


    유전자 검사결과, 당시 집단으로 발굴된 유해에 대해 3구로 판단되었지만 개체 분류과정에서 부분 유해가 더 식별되었고, 각각의 유해에 대해서 데이터베이스를 재분석한 정보를 비교 분석한 결과 고인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국유단은 최근에 발굴된 전사자 유해를 비롯해 과거 발굴한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 시료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지속적으로 재분석하는 노력을 통해 신원확인율을 높이고 있다.


    이번 고인의 신원확인은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가 확보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인들의 유가족들은 고인의 신원이 하루빨리 확인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다. 4남 4녀 중 2남은 2006년 벽제병원에서, 고인의 조카는 2013년 육군 제1사단에서 올해 6월, 8남은 파주 운정 보건소에서 무려 세 번에 걸쳐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를 실시했다.


    고인은 국군 제 1사단 12연대 소속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여 수원 북방전투(1950. 7. 3 ∼ 7. 4)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발굴 일자 / 지역 : 2012. 11. 16. / 경기 성남 분당구


    수원 북방 전투는 당시 시흥지구전투사령부가 한강 방어선에서 철수하여 1950년 7월 4일에 혼성수도사단과 육군 2·7사단이 시흥-안양-군포-수원 일대에서 북한군 제4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의 공격을 방어하고, 육군 1·3사단이 판교-금곡리-풍덕천-수원에서 북한군 제3사단의 공격을 방어했던 전투였다.


    시흥지구전투사령부는 수원 북방에서 적을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하여 ‘축차방어진지’를 편성하여 방어작전을 완수하기 위해  전력을 다 했으나,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인하여 결국, 7월 4일 하루간의 방어전투 끝에 수원이남으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투 중에 고인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축차방어진지 : 지연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추가적으로 후방에 구축된 방어진지


    고인이 전사한 지 60여 년이 지난 후, 좌측 대퇴골 부위의 일부  유해와 전투화 밑창, 버클, M1탄 등 유품이 후배전우들에게 수습되었다. 


    고인은 1928년 1월 12일 전라남도 정읍군 산내면 일대에서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사자는 어릴 때 가족이 많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농가의 장남으로서 가장의 역할을 도우며 살다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배우자를 만나 혼인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룬 기쁨도 잠시, 고인은 아내를 두고 국가를 위해 참전하였고 아내는 고인이 6·25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천주교 신자였던 아내는 혹여나 남편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벽에 전사자의 군복입은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오매불망 70여 년을 기다리다가 안타깝게도 92세를 일기로 2019년에   돌아가셨다.


    고인의 남동생 박희만(69) 님은 “형님의 유해를 조금 더 빨리 찾았더라면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던 형수님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었을텐데 너무 슬프고 목이 메인다”면서 눈물과 함께 소회를 밝혔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호국영웅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리기 위해서는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채취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전사자 기준 약 5만 3천여 명으로, 미수습전사자에 비해 시료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유해를 발굴해도 누구의 유해인지 알 수 있는 전사자 위치 정보나단서(인식표 등)가 대부분 없기 때문에, 유가족 시료를 확보해야만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 검사를 통하여 신원확인이 가능한다.


    유가족이라고 생각되시는 분들은(친․외가 8촌까지) 인근 보건소, 보훈병원 및 요양원, 군 병원에서 유전자 시료채취를 참여할 수 있으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표전화(1577-5625)로 연락주시면 유전자 시료채취 키트를 발송해 드리거나 직접 방문하여 시료를 채취해 드린다.

     * 유해소재 제보 시 최대 70만원 포상금 지급(6·25전쟁 국군 전사자 및 경찰, 학도병, UN군) 

     * 6·25 전사자 유가족 신원확인 시 1,000만원 포상금 지급


    국방부는 유가족들과의 협의를 거쳐 고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의미 있는 안장식을 거행할 예정이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마지막 한 분까지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있도록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의 내실화를 기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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